해태부대찌개

1987년 ‘의정부’ 해태부대찌개 / 時代遺憾(시대유감)

‘야! 너 공부 이따위로 해서 나중에 뭐가 될래? 성적이 이게 뭐야! 너 이 참에 학교 때려치우고 공장에나 취직할래?’, 아버지는 아들이 하찮은 자신의 부대찌개 가게나 물려받을까 걱정이다. ‘왜 하나 밖에 없는 아들 기를 죽이려고 그러세요,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저랑 약속했으니 역정 그만 하세요’. 어머니는 부대찌개 집 아들이라고 놀림만 받고 자란 아들이 안쓰럽고, 공부엔 관심도 없고 성적도 영 신통찮은 것이 혹시 자기가 가게 하느라 영양을 소홀히 챙겨줘서 그런 것 아닌지 애닯기만 하다. 그래도 외모상 키는 크고 건장하게 자라 준 것이 고마웠는데, 그마저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심하게 싸움박질하고 돌아와 눈물 콧물 쏟으며 부모에게 투정했던 말이 가슴에 못 박혀 자부심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름에 썩어 문드러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소시지 탕만 먹고 자라 양놈들처럼 키만 크는 거래!’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인수는 외모는 단단한 냄비 같지만 속은 부대찌개 속 뭉그러진 두부 같은 아버지와 오랜 장사에 손은 솥뚜껑처럼 두껍고 거칠지만 뇌는 소녀적인 어머니의 기대 사이, 정확히 엇박자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영웅본색은 100번도 넘게 돌려 보며 남대문시장에서 500원주고 산 선글라스를 쓰고 입에는 성냥을 물고 팝송을 듣는데 빠져있다.

엄마는 한참 잔소리를 들은 인수의 방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의 ‘둥, 둥’거리는 진동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쥔다. 저 애가 도대체 왜 저럴까? 저렇게 음악을 크게 틀고 아버지 잔소리를 잊어보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 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다 자라 턱에 수염 거웃한 아들의 속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싶다기 보다 그저 믿고 싶다. 우리 부대찌개를 두고 미군 부대에서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끓인 꿀꿀이죽이라며 지껄여댄 기자양반들보다 더 번듯하게, 그리고 꿀꿀이죽 먹고 배탈났다며 쇼를 하는 손님 놈 들보다 더 떵떵거릴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놈의 부대찌개 가게, 우리 아들은 안 했으면 좋겠다. ‘인수야, 이제 1년 남은 거 그 동안 성적 올려 의사 판검사 되라고 안 한다. 그냥 니가 열심히 해서 넥타이만 메면 엄마는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엄마의 목소리는 미닫이문으로 간신히 막은 거실을 허락도 없이 헤집고 다니는 가을 바람의 선들 함에 점점 사그라져갔다.

인수는 주말이면 세운상가에 야한 잡지를 구하러 서울에 간다. 배게 속, 장롱 위, 액자 뒤, 하나씩 모아둔 잡지의 양은 꽤 되기에 절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진귀한 일제 잡지를 구하면 친구 녀석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는 고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본다.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지만 무엇을 해도 몸놀림 민첩하고 혼란한 물품 창고에서도 단박에 물건을 분류해내는 센스가 있는 인수는 비닐로 싸여진 잡지 표지만 봐도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모양이다!’ 인수는 일제 잡지 하나 좋은 놈으로 삼십 분 안에 고르고, 항상 먹으러 가는 500원짜리 단골 씨레기 국밥집으로 향했다. 보통 국밥은 1500~2000원 했지만 세운상가의 이 집만큼은 500원이고 맛도 훌륭했다. 인수는 그냥 씨레기 국이 좋다. 친구 놈들은 인수 도시락 보온병에 담긴 씨레기 국을 보고 ‘쓰레기 국 먹네! 꿀꿀이 죽 집 아들이 역시 쓰레기 국까지 끓여 먹네!’라며 놀렸지만 인수는 왠지 짠한 기분이 올라오는 씨레기 국을 좋아했다. ‘그러게 쓰레기, 꿀꿀이, 니들 참 사는 게 고되다. 그래도 맛은 좋네! 누가 뭐래. 소시지탕 욕하면서 빠다 바른 맥도널스 먹는 개쇄끼들! 많이 쳐먹어라!’

국밥을 먹고 종로에 있는 극장에 혹시 TV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웃거리다 보면 이내 어둑어둑해진다. 그러면 광장 곳곳에 사람들이 촛불을 하나씩 쥐고 나타나 조용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모두 전두환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처음시작은 사람들이 쉬쉬하며 이름 붙인 ‘6월 항쟁’ 때였는데, 어떤 사람이 연세대학교에서 시위하다가 최루탄에 맞아 죽은 큰 사건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거리의 촛불이 하늘의 별만큼 많아지게 된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아무래도 전두환이 물러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인 것 같다. 인수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전두환이 아무리 시위대가 손에 쥐어주는 종이 찌라시에 써있는 것처럼 무수한 만행을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북한의 임남댐에 평화의 댐을 계획하여 나라를 구한 사람 아닌가! 인수는 9시 뉴스에서 본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물에 잠기는 영상을 잊을 수 없다. 저게 정말일까 했지만 그래도 뉴스인데 뻥이야 치겠냐 싶어 빨간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난생처음 기부를 했다. 인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나라를 구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분노에 가득 차 깜박거리지도 않는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을 보니 인수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불러 일으켰다. 전두환에 관한 소설 같은 찌라시들, 옷을 잘입었건 못 입었건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 무더기를 이룬 촛불 시위대, 퇴근하고 넥타이도 안 푸르고 시위 진압대에 맞서 몸싸움을 벌이는 넥타이 부대 아저씨들, 외국 영화만큼 황당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침수하는 장면, 세상이야 어찌 굴러가건 종로에 있는 개봉관에 가면 볼 수 있는 TV 속 사람들의 화려한 별세계, 센님같아 보이고 공부만 하게 생겼는데 야한 잡지랑 비디오를 한 무더기로 사가는 형들, 절대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창경궁 옆 돌담 길에서 한겨울에 입김 올라오도록 격정적 뽀뽀를 나누던 넥타이 멘 어느 늙은 아저씨 두 명의 실루엣, ‘하우 아 유, 하우 두유 두’ 멋진 꼬부랑말 영어 원어민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어느 외국인 사기꾼이 경찰에 잡힌 뉴스까지 한꺼번에 인수의 머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모든 것이 판단 불가 했으며, 모든 것이 고추장, 된장, 김치에 미제 그리고 독일 제 소시지, 꼬불꼬불 마카로니까지 짬뽕으로 들어가 한데 끓여진 부대찌개의 정체성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생긴 거는 뭐하지만 나는 부대찌개가 쓰레기 음식이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사람들의 말을 다 믿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아마 어른들이 좋다 하는 공부보다, 넥타이 보다, 다른 길을 가고 싶을 것 같다.’

집에 돌아온 인수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티비를 켠다. 요즘 한참 빠져있는 꼬부랑 말을 들으려 AFKN을 틀었다. 마침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나와 연설을 하고 있었다. ‘거 참 잘생겼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원래 배우출신 이력답게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아서 왠지 호감이 갔다. ‘근데 저 양반도 뭔가 시끌시끌한 일에 시달리는 것 같던데, 뭐였더라’ 인수는 9시 뉴스에 ‘환경 단체라던가, 뭐라던가’에 비난 받는 레이건 정부에 대한 뉴스를 떠올렸다. 그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유달리 경제발전에 힘을 쏟는 인물인데 어떤 사람들은 발전으로 생기는 쓰레기와 매연이 인류에게 굉장히 위험한 일로 결국 자연이 몸살을 앓으며 인간에게 되돌아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나 뭘 했다나’.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경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미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할거라고 연설했다고 한다. 인수는 AFKN 속에 레이건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아는 단어라도 들릴까 싶어 귀를 쫑긋 키워 본다. 그가 힘을 주어 무슨 문장을 반복하여 외친다. 매우 확신에 가득하고 신념 있어 보였다. 인수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냥 입으로 따라 말해 본다.

유, 유 에잉싱 나싱… 예…..,

유 에잉 씽 나싱 예,

유 에잉 씽 나씽 옛.

* 유 에인 씬 나씽 옛(You ain’t seen nothing yet) :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는 신 경제 현상을 만들어 내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함께 ‘총성 없이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40대 대통령 도날드 레이건이 연설에서 자주 사용하여 유명해진 표현이다. ‘You ain’t seen nothing yet’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는 뜻인데 레이건에게는 국민들에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 다가올 결과에 기대를 가지십시오’라는 격려와 희망의 표현이었지만, 유달리 과격한 경제 발전 정책으로 붕괴의 우려, 환경 문제의 대두, 담배산업과의 정경유착을 우려한 시민단체에 의해서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 돌아올 결과에 두려움을 가지십시오’라는 경고로 되받아 치는데 사용되었던 사회적으로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문장이다. 마가렛 대처 수상이,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인용,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데 사용했다.

2017년 ‘30년 전통’ 해태부대찌개 / 隔世遺憾 (격세유감)

‘야! 너 누가 우리 부대찌개 방송 그 따위로 하래!’ 인수는 얼마 전 방영된 KBC ‘맛집 정보 통통통’의 PD에게 전화로 소리를 지른다. ‘너 하도 방송하게 해달라고 몇 달 동안 사정사정해서 겨우 허락해 줬더니, 뭐! 우리 해태부대찌개가 짜? 야! 그럼 부대찌개가 프림 탄 설렁탕처럼 느끼해야겠냐! 원래가 짭짤하고 매운 게 정상이지. 너 그거 사과 안 하면 내가 가만 안 있을 꺼야! 니들 방송 말미에 죄송합니다 우리들이 잘못했습니다 글자 안 넣으면 가만 안 있을 꺼야!’ 인수는 아들놈들이 조르고 졸라 TV 출연을 결심했던 것이 후회스럽기 그지 없다. 찍을 때는 우리 집 부대찌개 맛이 최고라며, 사장님의 뚝심으로 가게가 이렇게 번창했다며, 우리나라 최고의 3대 부대찌개로 입 소문이 자자하다며 온갖 아양을 다 떨더니, 막상 방송 편집은 지들 돋보이고 시청률 오르는 쪽으로 막 갖다가 붙인 것을 떠올리니 분노가 끓기 시작했다.

인수는 그래도 부모님에게 가게를 이어받은 후 15년 동안 한결같이 그리했듯 좋지 않은 날도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손님상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육수도 더 부어주고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 주며 이런저런 수다도 건네 본다. 그래도 이렇게 손님들이 행복하게 부대찌개 먹으러 와주는 모습을 보니 얼굴의 열기도 가라앉고 아까보다는 덜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뭐래, 맛 좋고 영양가도 풍부한데, 개쇄끼들’ 인수는 위로가 되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며 자신이 그 동안 걸어온 길을 떠올린다. 비록 부모님의 기대와 엇박자로 공부 안하고 부대찌개 가게를 물려 받았지만 무엇을 하던 적극적이고 남보다 센스가 뛰어났던 그는 가게를 물려 받은 첫해 매일같이 국물과 조리법에 대한 연구를 감행했다. 한때 꿀꿀이죽이라 비난 받고, 건강 챙기기 열풍에 공공의 적으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던 부대찌개에 사골육수와 마늘로 차별을 준 것이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가게는 날로 번창했고 삼십 분 넘게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자 바로 옆 가게를 인수해 벽을 터서 한번 확장을 하고 더 이상 확장이나 분점은 만들지 않았다. 인수는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까지만 넓히고 그만 선을 그은 것이다. 물론 분점을 하게 해달라, 인스턴트 식품으로 만들어 팔자는 제안은 쏟아졌지만, 인수는 얼마 전 의정부 역 앞에 있는 건물을 사 ‘해태프라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들놈들 미래를 책임져 줄 수 있게 된 것으로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손님 상에서 ‘찰칵,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 그도 모르게 고개를 돌아 본다. 요즘 저렇게 우리 음식 사진들을 이쁘게 찍어 인터넷에 자랑도하고 좋은 글을 써주는 모양이다. 인수는 이제는 익숙해 질법한 카메라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여러 가지 뒤엉킨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시대가 변해 이제는 저 카메라 소리를 고마워 하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저 카메라 소리에 가슴 저미는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한때 미군부대에서 먹다 버린 음식쓰레기로 끓였다 하여 꿀꿀이 죽으로 오해 받던 우리 부대찌개를 고발한다며 기자 놈들이 손님인양 들어와 사진을 마구 찍고 도망가곤 했기 때문이다. 인수는 어머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던 카메라가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첫째 놈만한 고등학생 여자애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치며 ‘맛있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주말이면 내려와 가게를 돕기로 약속한 아들녀석들이 보이질 않는다. ‘이놈들이 아직 안 왔나?’ 인수의 집은 가게 바로 뒤의 주택이었기에 아들들을 부르러 가게가 한가한 틈을 타본다. 그런데 세 아들 놈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첫째 : 야! 시끄러워 너 우리나라는 아버지 재산 장남이 다 물려받는 거 몰라? 해태부대찌개도 내꺼고, 해태프라자 건물도 다 내 꺼야! 지금부터 나한테 잘 보여, 둘째 너는 공부 좀 한다고 형한테 대들지 말고, 셋째 너는 교활하게 우리 둘 사이에서 이리피하고 저리 피하지 말고, 지금부터 짱구 잘 굴려서 누구한테 붙어야 되는지 잘 한번 생각해 봐.’

셋째 : (피식) 네, 형.

둘째 : 형, 형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우리나라 법이 바뀌어서 자식들 재산 상속은 1:1:1로 바뀌었어. 그리고 나는 어차피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서 우리나라 최고 과학자 될 꺼니까 그 따위 음식가게랑 손바닥만한 건물 관심도 없다고. 어차피 우리 가는 길이 다르니까 나중에 괜히 니가 내 형이네 뭐네 하며 아는 척이나 하지 말라고.

문지방 너머로 자식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인수는 갑자기 자기 할 일을 다 마친 사골 뼈들의 꼬라지를 떠올렸다. 8시간씩 3번, 총 24시간을 우린 사골 뼈들은 특유의 옹골찬 패기를 잃고 구멍만 숭숭뚤려 손가락으로도 바스러지는 마른 뼈로 전락한다. 인수가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여 해태프라자 건물까지 인수하는 사이 아이들은 어떠한 세파의 불을 맞았는지 정신은 구멍 난 사골처럼 비어 있었다. 인수의 구멍 난 가슴에도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앞으로 눈을 뜨고 뭘 더 봐야 하는 걸까?’

2047년 ‘인공지능’ 해태부대찌개 / You ain’t seen nothing yet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인수 : 야! 너 이 자식 누가 쓸데 없는 사람들 만나고 다니래! ‘비스타 푸드’인가 뭔가 하는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우리 해태부대찌개를 지네들 사업 아이템으로 연구 중 이라고 하며 이제 슬슬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확정 적으로 제품 출시를 할 수 있다고 나한테 1시간도 넘게 떠들어 대더라. 너 내가 전에 나는 이런데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부대찌개를 이상한 유령 음식으로 만들 생각 없다고 똑똑히 얘기 안 했냐?

민수 : 아버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아세요? 미국이 세상을 지배하니, 중국이 대안이 될 것이니 하던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모두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변화 앞에 ‘공상 과거 소설’로 전락하고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떠들던 소설가들의 ‘공상 과학 소설’이 현실이 되어 세상을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하찮은 인터넷 검색 엔진이었던 ‘구들(Goodle)’의 인공지능 ‘비스트(Beast)’는 인간들은 감 잡을 수 도 없는 알고리즘을 사용, 과거 미국의 45대 대통령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이래 자가학습(self-learning) 시스템으로 스스로 진화하여 세계를 장악할 거대한 가상 제국(virtual empire)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는 미국 제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트 제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비스타 푸드’는 이상한 회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비스트’가 운영하는 음식 사업 체인의 한국 지부입니다. 바로 이들이 우리 부대찌개를 3D 프린팅 푸드**로 제작하여 각 가정에 보급하겠다는 건데요, 이제 모든 요식의 3D 프린팅 기술 적용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집에서 가정용 3D 프린터로 우리 부대찌개를 원할 때 마다 편히 찍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매출 증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심지어 화성에서도 우리 부대찌개의 매출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인수 : 야, 이놈의 새끼야. 내가 비록 공부는 고등학교까지만 하고 음식장사만 평생 해왔지만, 서울대 나와서 세상에 대해 잘 안다고 떠들어대는 니 놈보다 더 세상을 ‘똑바로’ 볼 줄 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운명이다. 자연분만 못 시키고 제왕절개로 태어나게 해 면역력이나 약하지 않을까 애처롭고, 성격 조용해서 흑 먼지 못 먹고 자란 니 놈이 눈에 밟혀 여태까지 웬만한 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다. 공부해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된다고 잠도 안자고 지랄을 하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졌을 때도, 꿈 한고비 꺾고 서울대 영양 디자인과 진학해서 무슨 슈퍼맨이라도 되겠다고 밥 안 먹고 영양제만 쳐먹다가 3달 만에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니 놈한테 별말 안 했다. 그런데 이건 다르다. 이번에는 니 놈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니 놈이 틀렸다고 내가 똑바로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비스트’인가 뭔가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부대찌개 맛 그리고 추억 어린 향수 떠올리며 이 장소로 와서 직접 먹을 거다. 3D 프린팅으로 집에서 찍어 먹는 유령 음식 따위하고 우리 부대찌개는 비교 할 수도 없다는 거 우리 단골들은 다 이해할꺼다.

민수 : 아, 아버지. 3D 프린팅 사업이 지금은 생소하게 느껴지시고 지금까지 해오신 일에 누가 되어 단골들을 실망시킬까 봐 염려하고 계신 것 잘 압니다. 그리고 첫째 형이 강운랜드에서 도박으로 돈 날리고 빚 얻어 해외 도주한 후 생사 확인도 어렵고, 셋째는 중국에 가서 보쌈 사업 크게 하느라 집에는 오지도 않고, 아버지도 외롭고 마음도 약해지셨을 거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여기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 자식은 저 밖에 없습니다. 저 믿고 의지하고, 함께 가시죠! 존경합니다. 아버지!

인수 : 민수야, 이 애비 아픈 가슴 건드리고 약해지게 만들어서 니가 원하는 것 얻으려고 하지 마라. 그런 술수가 세상에 먹힐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싫다.

민수 : 아버지, 그럼 감동 퍼포먼스 때려치우고 정확히 알아 들으실 수 있도록 이 사업의 장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매출 증대만이 장점의 다가 아니에요. 3D 프린팅 기술이 뭐가 좋은 줄 아세요? 바로 영양을 디자인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신식 가정용 프린터가 우리 국물 맛과 소시지의 질감 그리고 미나리의 아삭함까지 95% 살려낼 것인데요, 이것이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유령 음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모양과 맛은 부대찌개 이지만 영양은 십전대보탕 못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십전대보탕의 100배, 1000배까지 보신 효과를 디자인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서울대 영양 디자인과 출신 저의 전공을 살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실 만한, 국민 건강을 증진 시킬 수 있는 슈퍼푸드를 디자인해 보겠습니다. 염분과 가공 화학 물질로 건강에 우려를 샀던 소시지는 이제 비타민, 미네랄, 칼슘에 오메가-3까지 충전된 종합영양 음식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인수 : 니 놈이 뭘 안다구. 이놈아 내가 그래서 유령 음식이라고 하는 거다. 영양가는 더 높을지 몰라도 분유가 모유 못 따라가는 법이다. 아침에 자는 잠은 밤에 자는 잠 못 따라 간다. 의사들이 병이라고 말하며 항생제 잔뜩 먹이는 감기는 원래 제대로 앓기만 하면 몸이 더 건강해지는 좋은 병이다. 세상의 가장 꼭대기에는 과학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있어 사람들은 기실 여기에 지배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아버지가 개발한 사골국물 부대찌개도 분석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다. 그냥 사골 24시간 같은 냄비에서 주구장창 끓여낸 국물이 아니라, 8시간 1번, 물 바꾸어서 또 다른 8시간 1번, 마지막으로 물 한번 더 바꾸어서 8시간 1번 더 끓인 후 할 일을 다 한 뼈는 버리고 이 3개의 육수를 합쳐 한번 마지막으로 한번 더 끓인 정성 가득한 국물이라 완전히 맛이 다른 것을 단골들은 다 안다. 미식가 놈들은 과도하게 마늘 때려 넣어서 사골국물 맛 다 버려놨네 뭐네 떠들어 대지만 소시지 염분에 건강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부대찌개에 마늘 한 국자씩 퍼 넣은 마음을 단골들은 다 알고 있다. 처음 온 손님들은 미나리가 작고 비실비실하게 생겼네 뭐네 하지만 유전자 디자인 없는 계약농가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채소라는 거 일단 먹어보면 향내로 다 알게 된다. 이런 정성과 마음이 모여 몇 십 년의 세월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그냥 몸이 먹어서 음식일 뿐만 아니라, 먹인 사람의 마음을 먹은 사람이 마음으로 받아 생명으로 바꾸는 것도 음식이다.

인수 : (계속) 그리고 너 이 새끼, 보신, 보신, 보신 지랄 좋아하지 마라. 보신만 신경 쓰며 산에 가서 뱀 잡아 먹고, 산삼 구해 먹고, 중국으로 보신관광 들락날락하던 니 할아버지 친구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사실만큼 사시고 떠나야 되는 양반들이 병원에서 숨이 안 끊어져서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고통을 몇 달씩 당하고 뼈와 살이 말라 가던 과정을 나는 다 봤다. 니 할아버지가 비록 폐암으로 투병하며 힘들었지만 막상 떠나실 때는 정말 평화로이 가셨다. 뭐가 더 나은 결말인지 나는 모르겠다. 지금 유전자 조작 음식, 영양 디자인 음식, 유전자 디자인 애기들, 인간복제 등 우리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많은 것들의 결과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지 그것도 나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 세대 아니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반드시 어떤 ‘결과’들이 따라 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때 너는 어떤 존재를 남긴 사람이 되길 원하냐? 탐욕에 가득한 니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너는 다가올 것들을 볼 수 없다. 결국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민수 : 아버지도 모르시긴 마찬가지에요.

인수 : 담배는 해롭지 않네, 환경오염은 문제가 되지 않네 떠들었던 양반들이 내뱉었던 말들이 몇 십 년 후에 어떤 결과로 돌아 왔는지,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진 너희 할아버지의 고통을, 환경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제 유전자 디자인까지 해야 하는 이 시대의 아이들의 고통을 너는 보지 않는다.

어른들을 싸움을 먼발치 문지방너머 슬쩍 열린 문 사이로 보고 있던 민수의 첫째 아들, 어린이 박이수[I:Su]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다가 싸움의 열기가 사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안도감에 잠을 청하러 방으로 올라간다. 이수가 방문을 열고 닫는 소리에 잠들어있는 애기 동생 박유수[U:Su]가 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터트린다. 박이수는 구유에 아기 울음 방지 진동 버튼을 누르고 유수가 진정할 때까지 곁에서 기다린다. 박유수는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형을 올려다 본다. 그런데 이런 박유수의 눈동자 색깔이 형 박이수의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한국의 ‘3D 프린트 디자이너 베이비(3D Printed Designer Baby)’ 1세대로 그의 유전자는 아버지의 기본에 과학자가 세심한 디자인을 그려 넣은 ‘제네틱 엔진 하이퍼 휴먼 제너레이션(Genetically Engined Hyper Human Generation)’이었다. DNA 돌연변이는 통제 당하고, 인종적 한계는 지워졌으며, 혹시 있을 질병의 가능성은 수정되었다. 유수의 눈동자는 그의 머리 색과 마찬가지로 밝은 헤이즐이었고 다른 아기들보다 압도적으로 신체 비율이 서양인에 가까웠다.

박이수 역시 다정한 눈으로 동생을 내려다 보고 그가 다시 잠들길 기다린다. 그러다가 이내 지루해지자 손목 밴드의 버튼을 열어 음악을 튼다. 음악은 이내 박이수의 귀에 이식된 칩에 그 만 들을 수 있도록 전송되어 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격려해준다. 어린이인 박이수는 어른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미국 포크 통키타 가수들의 음악을 많이 들으며 따라 부른다. 한국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한 박이수는 박유수의 귀에 대고 어린이의 입으로 어른의 노래를 말한다.

‘You ain’t seen nothing yet, You ain’t seen nothing yet, You ain’t seen nothing yet’ ***

** 3D 프린팅 기술 : 집에서 가정용 프린터로 컴퓨터 화면에 있는 무언가를 종이에 인쇄 할 수 있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성숙의 단계에 이르면 평면이 아니라 3차원 물체로 원하는 것을 집에서 찍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난감, 일상용품, 의상, 액세서리에서부터 심지어 음식까지 출력이 가능하므로 21세기 초반 10-20년을 지지하고 있는 생산, 유통, 소비 시장에 막대한 변화를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 You ain’t seen nothing yet :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글: 정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