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TV를 켠다. 온통 마승희와 로이 류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지금 전 국민을 흥분시킨 세기의 스캔들은 (전) X전자 마승희 회장 자녀들과 로이 류 사이의 소송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내 아내에 관한 소식뿐이다. 로이 류 뉴스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다면, 아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내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 독학으로 E대 공예과를 합격했고 졸업했다. 학벌이야 큰 의미는 없다 하겠지만 흔히 우리나라 4대 일간지라 불리는 신문 중 하나의 문화면 기자를 하고 있는 내 안목으로 평가했을 때 아내의 유리 공예 작업은 독창적이고 강렬하면서도 섬세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면서 그녀의 인문사회 전반에 관한 놀라운 지식과 세상사의 통찰력에도 매혹 당했다.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나 막상 마음으로 존경했던 그녀와 결혼 후, 뻔한 말처럼 먹먹한 이상과 현실은 괴리는 우리 관계를 막막하게 이끌었다. 그녀가 강습으로 번 돈으로는 작업실 월세를 내고 재료를 사는데도 빠듯했으니, 여기 저기 연락이 와서 월례행사처럼 참여하는 온갖 그룹 전시회와 그래도 1년에 적어도 한번은 해야 한다는 개인전을 위해서는 빠듯한 내 봉급까지 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우리의 세상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로이 류는 서울에서 가장 큰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관장인데 작가들을 신인 시절에 발굴하여 소위 ‘키워준’ 다음, 몸값이 오르면 미리 수거해둔 작품을 어마어마한 값에 파는 장사치로 유명했다. 돌파구가 없는 신인 작가들 입장에서야 그렇게라도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되고, 안목 없는 소비자들 입장에서야 그의 흥행 파워를 믿고 구매하면 실수가 없다는 사실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그의 행보는 줄 곳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 그가 아내를 점찍은 것이다. 나는 여태 그렇게 기뻐하던 아내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로이 류는 정확히 작품의 지원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자신의 사교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선물할 유리 작품을 담당해 달라고 의뢰했다. 아내는 자기 작품을 위주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떡하던 로이 류와 커넥션을 만들기 위해 이를 수락했다. 로이는 이렇게 아내가 각 사람에게 맞춤으로 제작한 유리 작품 '마리 앙투아네트 시리즈'를 갤러리에 보관했고 비즈니스가 끝난 후 애프터파티에 환대의 의미로 접대하는 방식으로 요긴하고 완벽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한 무명작가에 의해 그저 선물로 제작된 유리 공예품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마승희 회장의 유언장에 언급됨으로 예술계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마승희는 한국판 여자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인물로 그녀가 제작한 스트림 시리즈 스마트기기는 한국에서 애플을 예전에 앞질렀고 유럽에서는 작년에 턱밑까지 추격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세계 어떤 기업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스티브 잡스처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처럼 파란만장한 가족사 또한 알려지며 요상한 평행이론의 주인공으로 온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처럼 돈 버는 일에만 쏟은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며 세상으로부터 숨겨둔 자식을 공개, 유언에 포함시켰다. 사생아로 자란 막내아들은 나머지 자녀들과 비슷한 조건의 상속을 받으며 더불어 유리잔까지 받게 되었는데, 아마도 마승희는 자신의 손이 그려진 마음에 드는 유리잔을 본인의 일부로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막내아들은 유언에 따라 마리 앙투아네트 작품을 로이 류에게 달라고 청구한 한 상태이다.  

그러나 TV에 등장한 로이 류의 생각은 꽤 다른 듯 보인다. 로이 류는 이것이 선물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그들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한 본인 갤러리 소유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작고한 마승희 회장을 착각하게 해서 송구하지만 모든 것은 단순한 오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아내가 크지 않은 돈에 의뢰받고 만든 유리작품이 왜 이렇게까지 중요해 졌을까 처음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정확한 가십으로 유명한 일간지 ‘디스트레스’의 분석 기사를 보고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디스트레스’는 이 사건이 매우 장기적이고 큰 금액이 소요될 법적 분쟁으로 갈 수 있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는데 그 핵심은 ‘돈과 자존심의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돈’이 걸린 쪽은 로이 류로 물론 그가 마리 앙투아네트 작품 시리즈를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파티에 온 손님들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은 맞는 듯 보이지만, 지금 마승희의 죽음과 인생에 관련된 스캔들, 그리고 유리잔이 함께 언급되고 세계의 관심을 받은 상황에서 이미 그 잔 하나만 옥션에서 2억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관련된 수백 건의 작품을 더하면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로이 류가 이 건에서 포기하면 나머지 인사들의 작품도 토해 내야 하니 마승희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리고 또 ‘자존심’이 걸린 것은 마승희의 자녀들 쪽이다. 가뜩이나 콩가루 집안으로 시끄러웠던 만큼 이제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기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사생아 취급받던 막내아들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퍼포먼스를 위해서라도 목을 걸고 유리잔을 뺏어 와야 할 것이고, 큰 아들은 배다른 동생을 따돌린다는 오명을 얻지 않기 위해 소송을 도와야 할 상황인 것이다. ‘디스트레스’는 기사 말미에서 이 모든 나비효과의 주인공인 유리공예가가 현재 실종상태라는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 잔의 가격이 더 오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또 하나의 뉴스가 전해졌다. 로이 류가 자신의 갤러리에서 유리 공예 작품을 모두 도난당했다고 발표했다. 마승희의 자녀들은 로이 류가 거짓으로 문제를 회피하려 든다고 맹비난하며 법정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전쟁을 선포했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고, 작품들은 어디 있으며, 또 아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며칠 동안 묶여 있던 TV를 끄고 잠시 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관계와 삶의 불안함에서 비롯된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심지어 아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삶을 포기하기라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다! 내가 아는 아내는 삶의 희망을 작품에 담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에너지를 작품에 가둘 수 있는 사람이 쉽게 포기할리 없다. 그렇다면 혹시 아내는 로이 류와 무슨 관계라도 되어서 나를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아니다! 그 또한 그럴 수 없다. 아내는 탐욕스런 로이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며 벗어나고 싶다고 중얼거리곤 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어떤 추측도 가능하지만 어떤 답변도 타당하지는 않았다. 

‘띵동’ 벨이 울렸다. 아마 소파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잠이 들었나보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관으로 나갔다. 택배였다. 배달원은 나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다. 발신인이 정확히 표기되지 않은 상자의 박스 테입을 뜯고 종이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 성경책 크기만 한 묵직한 또 다른 상자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상자는 빈 상자였다. 그러나 그 상자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줄 만큼 세심하게 디자인 되어있었다.  그 안에는 아마도 세상을 들썩일 만큼 비싼 무언가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우리나라 IT 업계 천재의 광기의 환영이 담긴 빈 상자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 카드에 쓰여 있는 익숙한 손 글씨를 읽어본다. 

‘잊어버린 것, 그리고 새로운 것’ 

 

There is nothing new except what has been forgotten. - Marie Antoinette

 

 

 

 

 

* 현대사회의 현대미술 : 전통적으로 미술은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 사물의 이미지를 가두어 두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과학발달과 더불어 카메라 발명되고 이에 주된 역할을 빼앗긴 미술은 나름의 실험을 감행하게 되며, 화가의 감동에 영향을 받는 인상주의 화풍이 발달하게 되었다. 미술은 또 한번 큰 시험대에 오르는데, 바로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생겨난 ‘미술관’이라는 규격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일이다. 이 제도에 빛을 발한 작가와 작품들은 현대미술과 기타 여러 가지 장르에 묶여 점점 숭배의 대상으로 존중 받게 되었고, 나머지 작가와 작품들은 다른 방식의 살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제도에 들어온 작가 들 중, 특히 현대미술의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 작가들은 몇몇 수집가들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하는 문화가 생겼고, 나중에 이들의 작품이 유명해 질 무렵이면 이 수집가들과 공생관계로 올라서게 되기도 한다. 

 

글: 정은 작가

Identification and Creation

Object Name / Antoinette

Artist / Rom

Classification / Glass

Work Type / Table Ware

Year of design / 2016 FW (1st generation) / 2017 SS (2nd generation) 

 

Physical Descriptions

Material / Glass , Thermal print

Dimensions / Ø90 x H160 mm

Country / Made in Korea

 

Contexts and Rights

Directed by STILL LIFE 

Original Drawing by ROM

Produced by CHAPTER 1 

written by Jungeun Jacka

photography by Taejun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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