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樹木園)

 나는 30대 중반의 대형광고기획사 카피라이터로 업계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일도 능수능란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몇몇 사람들에게 은근히 ‘천재’라는 칭찬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위장병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말도 안 되는 ‘업계의 관행’들이었다. 아직 어리다고 무시하고, 여자라고 무시하며 나의 공로를 가로채 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서라도 내 작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좋은 거지 뭐’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일한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내 것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상황이 전혀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내 것을 감추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일에는 열의가 떨어지고 사교를 피하고 안색마저 어두워져 갔다. 정말 가끔씩 숨을 쉬기가 어려워 폐나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병원을 가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만 들었다. 결국 화병을 다스리는 한약으로 간신히 버티게 되었지만, 여전히 너무 긴장하여 숨을 멈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미생’의 삶을 살던 나는 그래도 여전히 광고대행사의 중심중의 중심 ‘스마트폰 광고’ 팀에서 일했다. 우리나라 최강이자, 실질적으로 세계최강인 I 전자 광고를 벌써 여러 해 전담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틸 수 있는 세월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면이야 어찌되었건 겉으로는 멀쩡한 엘리트 라이프 그림에 조그마한 벌레가 붙은 것 같이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I 전자 측 담당 부장이 언젠가부터 대리 한 명을 데리고 다니며 상당량 본인의 업무를 맡겨버리기 시작한 일 때문이었다.

나는 일 잘하는 부장님과 일할 때 결과가 좋았다는 생각에 일단 실망감이 들었고, 평생 햇빛이라고는 보지 못한 듯한 하얀 얼굴, 짙은 쌍꺼풀, 비교적 작고 마른 몸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소년 얼굴의 그가 하찮아 보일 때가 많았다. 잔 실수를 반복하고도 미안해 하지 않는 얼굴에, 사사로운 농담을 주고 받다가도 우연찮게 사적인 이야기로 방향이 흐르면 상전이 하인에게 하듯 하대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자리를 떠버리는 그가 가끔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업계이지만 한참 선배인듯한 나를 은근히 비꼬고 무시하며 반말하는 태도 또한 웃겼다. 그를 나의 명석한 프로젝트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아주 작은 실수를 꼬집어 담당 부장과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준 적이 있다. 그런대 그의 태도는 의외였다. 전혀 흥분하거나 되받아 화내지 않고 여전히 평화로운 얼굴을 하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참는 것이 평생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살짝 수그러진 고개에서 미안해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일을 마음에 두고 나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늘 한결같이 여유롭고, 평화롭고, 건방진 얼굴로 나를 대했다. 그러한 그를 보며 나는 짜증내고 무안을 준 것이 미안했다. 그 이후로 그와 함께 일할 때면 나는 뜻 모를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뒤돌아서면 비웃고 말아버리는 업계의 생활 속에 작은 휴식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나는 결국 나를 질투하던 선배의 모함에 밀려 스마트 폰 광고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인생은 알 수 없는 반전의 연속이라는 말이 맞는 듯, 나는 별로 인기 없고 비하당하던 여성용품 팀으로 이동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시장의 변화와 산업의 약진으로 인해 가장 경쟁력있는 팀의 리더로 급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기 있던 여성 연예인들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던 여성용품 광고는 지금 피겨요정 김여나와 같은 탑중에 탑들이 점령하는 광고가 되었다. 별다른 인제 없던 시장에서 나는 모든 창작의 자유와 재능을 펼치며 담당하는 브랜드마다 히트를 일구어 냈는데, 남자 꽃미남 아이돌을 등장시킨 속옷 광고는 초대박을 이루어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 나는 인정받고 당당한 정체성을 가진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미생이 완생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골수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쁨을 안겨준 사실은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선배들이 하나 둘씩 업계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급작스러운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사회적 적폐청산의 분위기 속에 조용히 가방을 싸고야 말았다고 한다. 남의 불행에 기뻐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사회가 변해 하고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리고 자연히 오랜 시간 얼굴을 그늘지게 만들었던 기미, 잡티, 다크서클 등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비실비실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내 모습을 보며 예뻐졌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지금 I 전자에 경영주가 바뀌는 혼란기이고 담당자가 사직하여 믿을 만한 사람이 바로 투입되었으면 하는데, 지금 진행하는 캠페인은 아쉽지만 접고 바로 이동해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광고의 중심중의 중심인 스마트 폰 광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것도 운명인가 싶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나는 이번에는 팀의 리더이자 대형광고기획사 ‘부장’의 자격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작고 하얗던 소년 마대리가 I 전자의 ‘상무’자격으로 팀을 끌고 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팀에서 계속 일하고 있던 그래픽 담당자가 나에게 살짝 귀뜸 해 주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승희 회장의 숨겨둔 아들이 마대리, 아니 마상무이고 동안 외모와 달리 나이도 나랑 비슷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더 대박인 사실은 *마승희가 자식들에게 얼마씩 물려주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지금 자식들간에 상속에 관한 법적 분쟁 중이고 경우에 따라 경영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회의하던 중간중간 어딘가 어벙하고 줄 곳 도도하던 기억 속 마대리를 불러 오늘의 마상무의 얼굴과 비교해 보았다. 마상무는 마대리보다 훨씬 아저씨 같고, 넓고 거칠어진 모공이 생겼고, 푸르고 날카롭던 눈빛이 흐려져 있었다. 더 이상 그에게 평화로운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늘 바빠 보였고 이쪽 저쪽 움직이고 다녔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향성을 전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서로 한마디도 안하고 회의를 공적으로 마친 채, 나는 그가 걸어나간 복도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작고 마른 아이에게 크고 건장한 사내들이 몰려들어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키는 고개가 숙여진 만큼 작아져 작은 아이와 멀리서 봤을 때 비슷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 작은 아이의 꼿꼿한 자세와 목이 그를 집중하게 만든다. 아이는 눈에 힘을 주고 번뜩이는 빛을 내며 무언가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내뱉는다.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어른들은 숨도 한번 크게 안 쉬며 그의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노칠 세라 경청한다. 그가 가진 힘이 사람들을 작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할 말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나가던 중 서서 커피를 마시는 나를 보고 그가 다가와 미소 지었다. ‘많이 변했네’, 많은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은 말이었다. 때론 장난기 많은 소년 같았던 그는 거기 없었다.

 이미 멀어져 버린 그를 노친 나의 시선이 갈 곳 없이 두리번 거리다가 괜히 한쪽 벽면을 채운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젊고, 당당하고, 눈빛이 빛나고, 미소가 가득하고, 등이 꼿꼿하여 자세가 바른 매력적인 여자가 서 있었다. 기억 속의 분노에 가득 찾던 내 모습도 거기 없었다.

캠페인 하나를 마치고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하는 회의가 열리던 날이었는데, 마상무가 비서를 대동해 무언가 거대한 상자들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마상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고, 비서들이 하나씩 상자를 우리에게 전달하며 미소 지었다. ‘지난번 캠페인 반응이 너무 좋아 상무님이 준비한 작은 정성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주세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거 겉으로는 이거 김영란 법에 걸리는 거 아니냐며 팀원들과 웃었지만, 이렇게 고급스러운 선물을 팀원 모두에게 정성스러운 포장과 카드까지 겸하여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이 내심 고마웠다. 업계에서 감사를 말하는 행동 자체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한 자신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나는 팀의 리더로써 또한 감사하는 마음에 선물로 신중히 향수를 골라 준비했다. 그리고 카드를 적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잠시 주춤거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재주를 뽐내고 싶은 마음의 병이 있다. 가끔씩 이런 내가 싫지만, 결국 화려한 글솜씨를 뽐내며 지나치게 카드를 열심히 쓰고야 말았다.

 

‘노력하는 당신처럼 짙은 자연을 닮은 향수입니다. 우리의 기술로 당신의 기업에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캠페인을 선사하겠습니다.’

 

그 후로 두 달이 지나 I 전자 새로운 캠페인 회의를 하는 장소에 다시 마상무와 마주했다. 평소 표정 없던 마상무는 그날따라 더 표정이 없었고 말투는 초창기 AI 비서 프로그램 같이 들렸다. 메마른 듯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고 우리들이 준비한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는 없이 경쟁업체의 캠페인을 언급하며 새롭고 신선하며 앞으로 큰 약진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예견과 사회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우리의 회의 테이블 위에 그의 긴 가방끈을 전시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쾌했던 사실은 오래 전 우리와 약속한 회식의 약속은 마치 애초에 없었다는 듯 서류를 챙겨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아이디어에 대한 치례, 무언가 지난번 선물에 대한 인사말이나 회식에 대한 언급을 기대하던 나는 그 자리에서 무안함과 초라함을 느꼈다. 그 공간 안에서 나의 감정은 대상을 찾지 못하고 그가 휘발성 물질처럼 사라져버리고 남은 빈 의자에 머물렀다. 나는 조금씩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그는 더 이상 회의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상무의 직함에 올랐으니 매번 참석하기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담당자들과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약진하는 경쟁업체를 완전히 따돌릴 새로운 역사를 위해 밤잠을 설치고 또 설쳤다. 그 결과 기술의 최극점은 가장 인간과 자연을 닮을 것이라는 예측을 토대로 새로운 캠페인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자연을 닮은 기술’, 이 카피를 기초로 비주얼과 모델을 잡아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I 전자 측에 늘 그렇듯 극비리에 전달하였다.             

I 전자 측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뜻밖에 마상무가 갑자기 우리 팀 사무실로 갑작스런 방문을 했다. 우리의 이번 캠페인이 마음에 든다고 감정 섞이지 않은 말투로 말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미소 섞인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대화를 마친 후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와 다음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내 옆으로 걸어와 말을 걸었다.

‘카피는 마음에 들긴 하는데, 내가 직접 쓴 걸로 바꿔줄래?’

고급스러운 종이 봉투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딱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반문하지 않고 무감정하게 ‘알았다’고 말하며 카드를 받아 여전히 다른 업무를 진행했다. 그는 좀 당황한 듯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을 접고 그 장소 밖으로 걸어나갔다. 뒤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마상무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아닌 장난기 넘치던 마대리의 특유의 웃음소리였다. 건방진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내 뒷통수를 간지럽혔다. 나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카드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을 닮은 당신에게 우리의 기술로 가장 자연스러운 세상을 선사하겠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다. 이건 뭔가! 이 자식, 이자식이 내 문장을 도용한 건가? 아니면 이 자식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건가? 잠시 울컥 치밀던 개인감정을 늘 입는 프로페셔널한 사회인의 제복안으로 구겨 접어 넣고 팀원들에게 마상무의 뜻을 전달하며 카피를 이것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오히려 우리 캠페인에 더 잘 어울리는 카피라고 나에게 중얼거리고 당황한 마음을 황급히 정리하며 그날은 좀 일찍 귀가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러웠던 나는 마음의 답을 찾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기억 속에 작고 마르고 하얀 아이를 찾는다. 갑자기 변한 우리의 많은 모습만큼, 서로 연결되지 않는 마음의 단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론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다’와 ‘아니다’의 구간을 무한반복하며 생각에 투자한 시간의 본질을 흐린다. 이런 깨달음이 오는 순간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거실로부터 은은히 퍼지는 내가 그에게 선물한 똑같은 향수를 느끼며, 그 따스하고 귀엽고 차갑고 오만방자한 얼굴을 또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향기를 느끼며,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숨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발을 내디뎌보지 못한 은은히 따스하지만 아름답게 짙은 그의 대자연속에 나도 같이 숨쉬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가끔씩 멈추곤 했던 숨을 오늘 유난히 깊게 들이마셔 본다.

 

 

* 마승희 : 연결 글, 스틸라이프 단편소설 <마리앙투아네트> 참조

 

글: 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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